정치가 해야 할 일은 국민의 배고픔을 줄이는 일이지, 누군가의 배아픔을 달래기 위해 다른 국민의 자유와 재산권을 희생시키는 일이 아니다. 이 명제는 부동산 문제에서 더욱 중요하다.
박용성 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오래전 “배아픈 사람보다 배고픈 사람을 위한 대책”을 말한 바 있다. 핵심은 단순하다.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데 국가 역량을 쏟을 것이 아니라, 집이 없어 불안한 사람과 과도한 주거비로 삶이 무너지는 사람을 돕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참여정부 시기에는 ‘투기적 소득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강한 언어가 등장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집은 투자 대상이 아니라 거주의 대상이라는 기조 아래 다주택자와 투기성 보유자에 대한 규제가 강화됐다. 이제는 비거주 1주택까지 ‘투자·투기용’으로 구분해 규제하겠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세 정권의 정책은 서로 다르지만, 시장 참여자를 먼저 의심하고 규제를 앞세운다는 공통점이 있다.
문제는 투기와 정상적인 재산 보유, 임대 공급, 장기 투자 사이의 경계가 정치의 언어 속에서 너무 쉽게 사라진다는 데 있다. 불법 시세조종, 허위 거래, 내부정보를 이용한 땅 투기, 탈세는 엄정하게 처벌해야 한다. 그러나 한 채를 임대하는 사람, 직장과 가족 사정으로 거주지를 달리하는 사람, 노후 대비를 위해 장기간 보유한 사람까지 일률적으로 투기 세력으로 취급한다면 법치가 아니라 낙인이 정책을 대신하게 된다.
좌파 성향 정부에서 부동산 정책의 실패가 반복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금리, 유동성, 서울 집중, 신규 공급의 지연 같은 구조적 요인은 어느 정부에도 존재한다. 그러나 공급 부족과 수요 집중이라는 진단보다 ‘누군가의 과도한 이익’을 먼저 문제 삼으면 처방은 세금·대출·거래 규제의 반복으로 흐르기 쉽다. 규제가 예고되면 매물은 잠기고, 재건축·재개발과 임대 공급은 위축되며, 시장은 더 불안해진다. 가격을 누르려던 정책이 오히려 희소한 핵심 지역 주택으로 자금을 몰아가는 역설도 생긴다.
자본주의는 불로소득을 무조건 찬양하는 체제가 아니다. 정당한 과세와 공정한 경쟁, 독점과 불법에 대한 규율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출발점은 개인이 합법적으로 취득한 재산을 보유·처분·운용할 자유에 있다. 국가가 그 자유를 제한하려면 분명한 기준, 예측 가능한 규칙, 실제 피해에 비례한 수단을 제시해야 한다. ‘비거주’, ‘고가’, ‘다주택’이라는 외형만으로 사람을 투기꾼으로 부르는 것은 정교한 정책이 아니다.
부동산 문제를 비판하는 자유도, 부동산 규제를 비판하는 자유도 모두 민주사회에 필요하다. 정부 정책을 비판한다고 해서 투기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재산권을 말한다고 해서 서민의 주거 불안을 외면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서민 정책은 국민을 선과 악, 실수요자와 투기꾼으로 손쉽게 갈라놓지 않는다. 공급을 늘리고, 취약계층의 주거를 두텁게 보호하며, 불법과 특혜는 정확히 가려 처벌하되, 합법적 재산 보유의 자유는 존중하는 정책이어야 한다.
정치는 배아픔을 이용해 표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국가는 배고픔을 해결해야 한다.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이웃의 성공을 처벌하는 정치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노력으로 내 집과 더 나은 삶을 만들 수 있게 하는 자유의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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